부산행 연상호 감독 기생수 더 그레이 연출
이와아키 히토시 작가의 단행본 만화 기생수(국내 출판사: 학산문화사)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제작됩니다.
기생수 드라마 판의 제목도 이미 정해졌습니다. 타이틀은 기생수 더 그레이로, 넷플릭스가 제작하고 <사이비>, <돼지의 왕>,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연출을 맡습니다.
이정현, 구교환의 출연도 확정지었습니다. 이들은 이미 <반도>를 통해 연상호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바 있죠.
만화 <기생수>의 실사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14년 야마자키 다카시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바 있습니다.
야마자키 다카시 감독의 영화 <기생수 1~2>는 당초 우려와 달리 제법 준수한 결과물을 내놓았는데, 원작의 큰 틀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서사를 잘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스러웠던 특수효과가 큰 이질감 없이 영화 속에 제대로 구현됐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숱한 애니메이션(대표적으로 저패니메이션)들이 실사화를 거치며 원작을 난도질 했던 점을 상기하면 영화 <기생수>의 결과물은 이례적이었습니다.
기생수가 영화에 이어 드라마(기생수 더 그레이)로 제작된다는 소식에 기대와 함께 우려가 공존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감독 때문입니다.
기생수 더 그레이 통해 연출력 시험대 올라
연상호 감독은 지난 2011년 연출 데뷔작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과 2013년 <사이비>를 연이어 내놓으며 무시무시한 신인 감독의 등장을 알렸습니다.
두 애니메이션은 전국 누적 관객 각각 2만 명 안팎에 머물며 비록 흥행에서는 쓴 잔을 마셨으나, 인간의 내면을 묘사하는 냉소적인 시선과 통찰력 만큼은 매우 날카로웠습니다. 필자 역시 <돼지의 왕>과 <사이비>를 블루레이 매체로 소장할 만큼 매우 아끼는 작품들입니다.
그런 그가 애니메이션이 아닌 처음으로 실사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우려보다 기대가 앞섰던 이유도 여기에 있죠.
기대에 부응하듯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 영화인 <부산행>은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부산행>은 전국 누적 관객 1157명을 기록하며 소위 대박을 터트립니다.
<부산행>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애니메이션 <서울역>은 비록 14만 명에 그치는 성적을 거뒀으나 나름 준수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연상호 감독의 행보는 실망의 연속이었습니다. 연상호는 2018년 <염력>과 2020년 <부산행>의 후속작인 <반도>를 잇따라 내놓았으나 평단과 관객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연상호 감독이 있었습니다. 평이한 내러티브 구조와 안일한 연출력이 그 이유였죠.
연상호 감독은 작가로서의 능력은 분명 뛰어나지만 유독 실사화에선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마치 오시이 마모무를 연상케 하죠.
기생수 더 그레이를 통해 연상호 감독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정현, 구교환 등 배우들의 숨은 잠재력을 얼마나 끌어 내느냐, 이미 원작 만화가 지난 훌륭한 이야기 구조를 어떻게 재현하고 해석하느냐, 등입니다.
원작 만화 기생수는 매우 독창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작품으로, 무엇보다 인간 혐오에 대한 고찰이 매우 빼어난 작품입니다.
연상호 감독을 향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생수 더 그레이를 통해 그의 연출력이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부디 연상호 감독의 재능이 애니메이션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